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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타협하는 내안의 또다른 세상


작은 축구공이 세계를 들썩거리게 한다.

소리 없는 전쟁이라는 금융시장, 실은 그 속에 참기 힘든 수많은 이의 비명으로 가득하다.

해가 바뀔 때마다 다이어리에 꽉 채워놓은 셀 수 없을 만큼의 계획들과 희망이란 이름의 망상들처럼, 결국엔 발생하지도 않고 

그저 지나간 어떤 시간으로 잊혀 질 그 무언가들이 늘 세상 사람들을 위로하고 에너지를 준다. 우린 그렇게 스스로 타협하고 위로하고 망각의 터널로 기꺼이 들어간다.

 

"너보다 못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고 살아라!"  "높은 곳만 바라보면 인생 힘들어진다!" "생일날 잘 먹으려다 그 전날 굶어죽는다!"

진실로 존경하는 대한민국 어머니들이 이 땅의 아들들에게 자주 하시는 당부이자, 뼈있는 넋두리였다. 적어도 내 또래엔.. 혹시 요즘도?

현실을 직시하고 기대를 너무 크게 갖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자족하며 살아라 라는 말씀이신데, 그 뒤 배경이 씁쓸하다. 

당신들께서 버텨오신 세상이 불행하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였다는 점, 그리고 그 속에서 본의 아니게 인이 박히도록 몸소 체득하신 삶의 어떤 지침 같은 것이었다는 점.. 확실히 지금의 우리는 엄청난 빚을 지고 살고 있다.

 

새마을 운동과 9시 뉴스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 등하교시에 운동장에 서서 기계적으로 하던 국기에 대한 맹세 그리고 야간 자율학습 빠지면 엄청나게 나쁜 학생인 줄로만 알던 그 시절.. 설사 무지하게 싫고 의미 없는 짓거리인줄 알았더라도, 대학이라는 전국민적 제2 초등과정에 입학하는 순간 미팅, MT, 대동제(당시 웬만한 대학축제는 대동제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강의 빼먹고 당구치러 가기, 대학가요제 등으로 아주 쉽게 잊어버리고 그냥 추억의 한 순간으로 술안주 거리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그렇게 청소년 딱지 떼면서부터 시작한 망각하기, 뭍어두기, 외면하기는 내 귀한 2세들이 시집장가 갈 때까지 

아주 습관처럼 꾸준하게 자기 인생에 있어서 정말 그 어떤 것보다 일관되게 성실히 지켜나간다. 물론 가끔은 결코 술안주거리가 아니라고 목에 핏대 빡빡 세우면서 귀가 직전까지 분노에 찬 기억들을 되새김질 하는 행위를 하기도 한다.

 

우리는 두 가지 세상에 발 딛고 산다.

하나는 존경해마지 않는 어머니의 지침과 맞닿아 있는 세상 그리고 또 하나는 스스로 그 삶을 부끄럽게 느끼지 않도록 진통제 역할을 해주는 술상 위의 실존하지 않는 세상이다. 요즘들어 유난히 그 실존하지 않는 삶에 대해 부끄럽고 미안하게 만드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 인구조사대상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위안부 할머니들, 촛불 쥔 중학생들의 작은 두 손 그리고 이젠 기억도 가물거리는 민주화투사들의 부고.. 

아주 많이 부끄럽게 한다. 

백분토론을 킬킬대면서 또는 마구 흥분하면서 보는 나와는 다르게, 정작 그 얘기의 주인공들은 내가 애써 외면했던 삶을 온 몸으로 부대끼면서 2시간짜리 분노를 너머 수십년의 자가발전 에너지로 승화시킨 것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체험 삶의 현장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시청자였고, 또 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 체험 삶의 현장의 농부이고 상인이었다. 

아주 또렷이 구분되는 이 두 가지 세상,

어디에 발 디디는가 보다는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가에 대한 문제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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