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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융성 이루려면, 공공기관/공간의 운영철학과 태도부터 바뀌어야한다.

문화예술융성 이루려면,  

공공기관/공간의 운영철학과 태도부터 바뀌어야한다.




국가차원에서 문화예술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무언가 해보려는 발상과 시도는 계속되어왔다. 하지만 그저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이벤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걸 문화예술을 텃밭으로 살고 있는 이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고 관리하는 관이나 그 결과를 배분받아서 운영되는 공공문화예술공간들은 예산의 문제를 입 아프게 언급하지만, 궁극적인 시작은 철학과 태도의 문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기본적으로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관의 역할은 인솔자나 리더가 아니라, 협력자나 도우미의 그것이어야 한다. 소위 문화예술을 콘탠츠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나 공공문화공간은 단순 관리자나 대행업자의 태도와는 확연히 달라야한다.

 

예술을 다루는 공공기관이나 공공공간은 자체적으로 소위 콘탠츠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단지 빌려서 사용 할 뿐이다.

그래서 역할놀이가 필요하다.

무엇으로 이 놀이에 참여할 수 있을까?

 

집행되는 예산이나 공간사용권이란 카드를 가지고 끼어들면, 여지없이 갑과 을 관계로 놀 수밖에 없어서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게 된다. 더불어 함께 놀이하는 다른 파트너들에게 본의든 아니든 상처만 안게 한다.

공공이라는 무시무시한 명분으로 관리/통제/감시자의 역할로 다가올 경우, 예술창작과 향유의 다양하고 예리한 감성의 촉을 싹뚝 잘라버리면서 즐거워야 할 놀이판을 파괴해버리는 결과를 낳게 한다.


그럼 어떤 카드를 가지고 놀이에 참여해야하나?


예술에 대한, 사람에 대한 동반자로서의 신뢰성과 협력자로서의 책임감을 카드로 들고 들어와야 한다. 돈이나 권력, 권위, 지침으로 배팅하는 태도는 놀이에 참여하는 최악의 태도이다.

전략과 전술에 입각한 이슈창출이나 헤게모니 쟁탈식의 게임논리로 예술생태계를 파괴하는 짓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하는데, 여전히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그러한 주체임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혹은 인지하더라도 또 다른 갑과 을의 논리로 늘 책임회피를 한다.

 

외형상으로는 많이 바뀐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속에 자리하고 있는 주체들의 철학과 태도는 이상하리만큼 요지부동 유리성이다.

스스로 이 유리성을 깨지 않고서는 예술창작, 대중의 창의적 삶이 아니라,

그저 구휼이나 나눠주기식 복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예술정책과 운용이 되어버린다. 인식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시간과 열정 그리고 그에 따르는 실천이 요구되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라는 걸 우리 모두는 안다. 물론 변화의 필요에 대한 자각이 먼저 있어야 한다.

현재의 대한민국, 예술생태계가 안고 있는 문제의 또 다른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간은 언제든 내어줄 수 있고 기다려 줄 수 있다.

그리고 어긋난, 또는 기대에 못 미치는 열정일지라도 격려해주고 지켜봐줄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주체의 변화필요성에 대한 무신경이나 실천 없는 현상의 되풀이는 어떻게 할 답이 없다.

 

기금신청서식에 명기되어져 있는 장르나 학문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숨 쉬고 살아있는 생태로서의 예술에 대한 인식과 철학, 그리고 그것이 반영되는 태도의 변화가 안타까울 정도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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