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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나라는 인식 그리고 실천이 필요하다


마케팅은 욕망을 화폐가치화하는 작업이다.

개인이나 기업의 욕망과 사회대중의 욕망은 다를 수 있다.

이것이 공공의 개입이 필요한 지점이다.

 

현대의 시민들은 아침으로 쌀을 먹을건지 빵을 먹을건지 선택할 수 있다.

그 선택 중 하나를 생산해내는 농부는 그 누군가의 선택을 위해 상상하기 힘든 노동을 투입한다. 빨간 양말, 파란 넥타이, 빤스 고무줄, 우리가 영위하는 일상의 거의 모든 것들이 이런 누군가의 절대적 노동으로 생산되어진 것이다.

쌀도 밀가루도 소비하는 입장에서 선택은 할 수 있지만, 그 어느 하나도 없어서는 우리네 삶이 유지가 안되는 것들이다.

문제는 이들의 노동가치가 화폐가치로 전환될 때, 발생한다.

자본주의 구조아래에서 노동가치가 화폐가치로 환산될 때 불합리가 발생하고, 다시 불균형을 낳는다. 그리고 반복되고 쌓여간다.

 

이 지점 또한,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

필수적이지만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보전이 필요하다.

노동가치의 평가 불균형은 “함께”, “우리”라는 공동체의 삶을 조각조각내는 심각한 상처를 만들어낸다. 태어난 마을을 떠나 대도시로 가려는, 아니 가야만 한다고 당연시하는 현재의 상황이 단지 다른 세상, 보다 큰 세상에 대한 이상향적 로망에서 비롯된게 아님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좋은 물질적 환경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자신이 태어난 소위 시골/지방에서의 삶은 제대로 화폐가치로 환산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불합리의 격차를 줄이고자하는 욕망을 안고, 이를 반복해서 생산해내는 불합리의 구조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21세기 이 땅의 어느 시골을 가도 비슷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10대 다음이 바로 40대인 이상한 상황이 너무나 흔하다. 20-30대가 없는 공동화현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눈에 보이는 부분보다 더 큰 문제를 만난다.

중학교까지는 태어난 마을에서 살다가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좀 더 큰 단위의 지역으로 유학을 가고, 대학갈 때 좀 더 큰 단위의 지역으로 소위 대도시로 진학하고 결국 거기서 직장생활을 하고 결혼도 한다. 그리고 추석, 설에 한번씩 여행오듯 고향을 방문한다.

이들에게 고향은 뭘 의미하는 걸까?

어느 시점이 되면 반드시 떠나야하는 곳, 어느 시점이 되어서도 남게 되면 사회에서 뒤쳐진 패배자의 삶으로 인식된다. 그들 개인의 귀책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는 세상이 구조적으로 만들어낸 결과이다.

단순히 작은 단위의 공동체가 겪는 여러 문제 중의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개인의 정체성, 자존감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개인은 사회를 구축하고, 관계는 개인을 정의한다.

함께 풀어야 할 숙제이다.

내 삶과 상관없는 누군가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런 세상에 와있고, 이를 뒤집을 수는 없다.

그냥 개인 아니라 또 다른 “나”라는 인식공유와 배려

그리고 실천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