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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난장이 사라지고 있다


난장은 사리지고 그 자리에 난장판이 들어서고 있다.

 

사전적으로 봐도 난장이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의 역할에서 축귀의 무속적 의미,

더불어 공생의 사회 복지적 기능까지 참으로 다양한 것을 담고 있는 한민족사와 같이 해 온 교감채널이면서 다른 형태의 자연발생적인 축제이다.

 

일 년에 일천 여개 이상의 축제가 열리는 이 땅에서,

만드는 사람들이든지 참여하는 사람이든지 말 그대로의 축제에 부합하는 정서적 유대를 만들어내는 축제가 얼마나 될까? 

축제의 성격과 형식 그리고 진행에 대한 논의 이전에, 과연 근대화 이후의 우리네 삶에 축제적 정서를 녹여 내거나 밖으로 꺼내어서 같이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과 지속적인 실행이 있어왔는가? 

월드컵이나 촛불집회 등에서 보여 지는 마치 거대한 사회적 운동처럼 보여지기 까지 하는 정서의 표출과 공유를 바라볼 때면,

이토록 자발적으로 펼치고 공유하고 거기에 더하기까지, 과연 이런 사람 사는 공동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그 속엔 눈에 보이진 않지만 형식이 있고, 강제하고 강요하진 않지만 질서가 있고, 중구난방처럼 보이지만 메시지를 담고 있다.

 

무대를 만들고 공연을 하고 화려한 볼거리를 통해서만 축제가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감성이든 지성이든 펼쳐내고 그러한 펼침을 즐길 줄 알고 그러함으로써 물리적인 것이든 정서적인 것이든 해소지점이 만들어지면

그 자체가 축제인 것인데, 어느덧 본질은 사라지고 형식과 논리만 남아있는 것 같은 것 같아서 슬프다. 

난장 부린다, 난장 튼다 라는 얘기는 난장판이다라는 얘기와는 완전히 다른 것인데, 비슷한 뉘앙스로 뭉뚱거려지는 것에 비애를 느낀다.

난장부리는 행위, 난장부릴 수 있는 정서, 난장부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대학이라는 또 하나의 시스템에 들어가서야 자신의 인생설계에 대한 고민과 이행이 암묵적으로 동의되어지는 현재의 교육시스템 속에서

-하지만 이미 머리는 거대한 사회적 틀 속에서 굳어져있고, 가슴은 뜨거운 무언가가 불피워보지도 못하고 재가 되어 버려, 정말 비정상적으로 나이에 맞지 않게 정서적 고사상태가 되어 있다-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보다는 해야 돼! 라는 얘기를 더 많이 들어왔고,

보고 느끼는 것조차 제대로 경험하기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온 이들에게 성인라는 말도 안 되는 옷을 입게 하고,

장미 가시에 한 번도 찔려보지도 못하고 그저 책에서나 TV에서나 식물도감 보듯이 알고 있는 이들에게 장미향을 얘기로 그림으로 가르치게 하는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과연 축제가 가능할까?

 

드러냄과 받아들임, 충돌하면서 발전한다는 것, 부딪힘은 확장을 위한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이 인식의 기저에 자리하고 있을 때 이런 축제의 꿈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축제라는 외형적인 사건전개 이전에, 드러내고 펼쳐내고 충돌하는 방법과 이러한 것이 아무 거리낌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고민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행위가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아름다운 것이란 것에 대한 인식의 확장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불행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다.

깨끗한 공기와 물은 물려주지 못해도 이런 인식의 악순환은 되물림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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